작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미국교육학회(AERA; American Educational Research Association)에서 아주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AERA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각국에서 15,000여 명의 교육학자들이 참가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교육학회이다. 학회 주최측은 학회의 여러 일정 중에, 전 세계에서 오는 내로라 하는 교육학자들을 대상으로, 학회가 열리는 필라델피아 인근의 한 빈민가 공립학교를 방문하는 일정을 기획했다. 온갖 심오한 논문들이 발표되고 정책들이 토론되는 치열한 아카데믹 향연 중에 빈민가의 일선 공립학교 방문이라니, 다소 낯선 일정이었다. 미국의 공교육이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 에서 연이어 하위권을 기록하며 무너져 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오신 손님들에게 굳이 치부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궁금했다. 그것도 반듯한 모범학교가 아닌, 빈민가의 문제투성이의 학교를. 아침 일찍 참가 신청자들을 모이게 한 곳은 학회가 열리는 호텔의 입구였다. 온갖 리무진과 명품 차들이 들고 나는 한쪽에 누런색 낡은 스쿨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기한 스쿨버스』라는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과학 만화책이나 일부 영화에서만 보던 미국의 노랑 스쿨버스를 처음 타본 나는 생각보다 좌석이 좁고 지저분하고 불편해서, 보이는 것만큼 낭만적인 것이 아니구나 실망스러웠다. 필라델피아 다운타운에서 한 시간 정도를 달려서 우리가 방문하기로 되어 있는 고등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이 있는 우드베리 공립학교였다. 가는 동안에 인솔자가 그 학교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해 주었다. 흑인의 비율이 45% 가량 되는 매우 가난한 지역의 학교였다. 미국은 현재 모두에게 무상급식을 하는 형태가 아니라 저소득층에게만 무상급식을 하는 시스템인데, 전국 평균 10% 정도의 학생들이 무상급식을 하고 있는데 반해, 이 학교는 전교생의 60%가 무상급식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빈곤층이 많다는 뜻이다. 우드베리 공립학교의 가장 큰 문제는 학생들이 공부를 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대학을 갈 생각은 전혀 없고 설령 대학을 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학에 보낼 수 있는 경제력이 없기 때문에 학부모들도 대학에 진학시키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학교를 다니는 것에 대한 열정도, 의미도, 희망도 없는 학교였다. 그런데 그런 학교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학회는 세계에서 온 교육학자들에게 그 학교의 변화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그 다음날부터 봄방학을 하는 금요일 오후였다. 스쿨버스에서 인솔해 주는 교사가 방학 직전 금요일 오후라 평소와 달리 학교가 산만할 것이라고 감안해달라고 했다. 학교는 생각보다 컸다. 중고등학교가 함께 있어서인지 공간은 넓었지만 시설이나 관리 상태는 보통 수준이었다. 학회 방문객들은 7-8명으로 조를 나누어 각기 다른 수업을 참관하도록 일정이 구성되어 있었다. 학교에 관한 간단한 설명들이 들어있는 폴더를 색깔별로 구분해서 그룹을 나누었는데, 나는 다른 7-8명과 함께 빨강 폴더그룹에 속하게 되었다. 노랑 폴더, 파랑 폴더, 초록 폴더, 흰색 폴더 등등 몇 십 명의 방문객들이 각각의 그룹에 속해서 자원 봉사하는 학생들을 따라 각기 다른 수업을 참관했다. 나는 영어, 수학, 과학, 역사, 외국어 등 모두 6개의 수업을 참관했다. 그런데 교육학자로서 셀 수 없이 많은 수업을 참관하고 분석해 왔지만 다른 곳에서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점들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여섯 수업 모두 나는 교실에 들어가서 교사가 어디 있는지를 애써 찾아야만 했다. 어디가 교단인지, 어디가 앞인지, 교사는 어디 있는지, 들어가자마자 바로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래의 사진이 한 예이다. 사진에 나타난 것처럼 학생들은 한 방향을 보고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방향을 보고 앉아 있어서 어디가 앞인 건지 금방 알아채기 어렵다. 또한 교사는 칠판 쪽에 있는 것도 아니고(이 교실은 칠판이 두 벽에 있었다), 교탁 쪽에 있는 것도 아니고(이 교실에는 교탁이 없었다), 잘 찾아보니 창가에 기대어 있었다. 다른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사가 학생들 틈에 섞여 있어서 누가 교사인지 애써 찾아봐야 했었다.
또다른 놀라움은 학생들의 몰입도였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학교 수업 참관을 많이 했었는데, 대부분 학생들은 뒤에 참관자들이 들어오면 뭔가 긴장하고 어색해 하고 외부인을 의식을 했다. 그런데 이 학교에서는 참관자들이 들어오는지 나가는지 어느 수업에서도 학생들은 의식하지 않았다. 아무리 조심스럽게 조용조용히 움직인다 해도 문을 열고 7-8명의 발자국소리와 움직이는 소리가 당연히 날 수 밖에 없는데, 학생들은 마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양 우리 쪽으로는 돌아보지도 않고 하던 일에 몰두하고 있을 뿐이었다. 아래의 사진은 내가 가까이 가서 촬영을 한 것인데, 학생들은 내가 옆에 있어도 전혀 안 보이는 듯이 아랑곳 않고 하던 논의에 집중하고 있다. 난 투명인간이 된 느낌이었다.
여섯 개의 수업을 모두 참관했는데,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바로 내가 참관한 수업 중에는 "강의식" 수업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모두 학생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하는 방식으로, 교사는 학생들이 하는 걸 지켜보거나 학생들 중 하나인 것처럼 녹아 들어서 토론하고 있었다. 내가 본 수업만 그런가 싶어서 수업 참관이 끝난 후 모든 그룹이 한 곳에 모였을 때 다른 그룹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봤다. 혹시 강의식 수업 보신 거 있냐고. 여기저기 그룹에 물어봤는데, 아무도 못 봤다고 했다. 궁금해서 교장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혹시 외부 방문객들이 온다고 해서 모범적인 수업만 보여주신 거 아닌가요? 제가 본 수업 중에는 강의식 수업은 하나도 없었는데 강의식 수업 좀 볼 수 있을까요?"
"강의식 수업이요?"
교장선생님은 매우 낯선 단어를 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옆의 학생들에게 우리학교에 강의식 수업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학생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했다.
"강의식 수업이요? 우리학교에 강의식 수업이 있나? 음…. 아마도 4-5년 전 쯤에 불어 수업이 강의식 수업이었던 것 같긴 한데…, 하지만 지금은 강의식 수업은 없는 것 같은데요…"
내가 속한 조가 6개의 수업을 참관했고 각기 다른 수업을 참관한 그룹이 여럿이었기 때문에, 그날 방문객들이 참관한 수업은 각기 다른 수업 수십 개였다. 그 중에서 강의식 수업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지 않을 수 없었다.
참관을 마친 후 수십 명의 학자들이 한 쪽에 앉고 맞은 편에는 학생들과 교사들 수십명이 앉아서 학자들의 질문에 응답하는 패널토론이 있었다. 까만 흑진주처럼 귀여운 여학생은 자신이 얼마나 희망없는 삶을 살았었는지, 그리고 이 학교에서 교사들을 만나서 얼마나 삶이 바뀌었는지, 그래서 지금은 전액장학금을 받고 프린스턴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덤덤하게 했다. 더벅머리 히스패닉 총각은 자신이 얼마나 반항아였는지, 얼마나 인생 포기자였는지, 그런데 이 학교에서 어떻게 서서히 마음을 열게 되었는지, 그래서 지금은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 입학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나갔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학생들의 눈빛이었다. 사실 인종주의적 발언이라 해도 할 말이 없지만, 내가 지금껏 만난 흑인이 많은 지역의 학교들에서는 학생들은 의욕이 없고 총기는커녕 생기도 없는 흐리멍텅한 눈빛으로 어슬렁거리기만 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우피골드버그가 열연한 영화 '시스터 액트 2'에 나오는 학교 아이들처럼 희망 없는 눈빛이거나 아니면 반항기 가득한 눈빛뿐이었었다. 그런데 우드베리 학교의 아이들은 내가 평생 봐온 어떤 학생들보다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마치 굉장히 재미있는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것 같은, 어린 아이들의 몰입하는 눈빛, 바로 그런 눈빛이었다. 쉬는 시간에 다른 교실로 이동하기 위해 복도를 지나는 무수한 아이들, 그들 모두의 눈빛이, 마치 너무나 흥미진진한 다음 게임을 위해 이동하는 듯한, 굉장히 진지하고 총기가 넘치는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복도에서 나를 지나치는 그런 아이들의 눈빛을 보며 감탄을 했다. 혁신의 결과가 이거였구나! 그 어떤 대입성공결과보다도 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감동적인 순간은 바로 그 눈빛이었다.
많은 교사들이 현재의 교육 문제는 공감하면서도 바뀌는 게 하루 아침에 되겠느냐, 오랜 시간 고착화된 체제가 변화가 되겠느냐, 계란으로 바위치기 아니겠느냐며, 지레 포기한다. 우드베리 교장선생님에게 물었다. 문제투성이의 학교에서 이렇게 훌륭한 학교로 변화하는데 얼마나 걸렸느냐고. 개혁을 시작한지 5년이 지나고 6년째 접어들고 있다고 했다. 100년도 10년도 아닌, 단 5년만에 폐교 직전의 학교가 전세계 교육학자들에게 보여줄 만한 학교로 변화했다니, 이건 정말 해볼만하지 않은가?
"강의"가 없는 학교로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우드베리 공립학교. 변화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앞장서길 주저하는 우리 모두에게 적지 않은 시사점을 준다. 1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한 우드베리 교사의 책상에 있던 팻말이 자꾸만 떠오른다.
"교사는 한번에 한 아이를 바꿈으로써 세상을 바꾼다."
[출처: 중앙일보 J Plus. 2015.10.30.] "강의"가 없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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