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공부 잘 하는 민족이 따로 있나?

공부를 잘 하는 민족은 따로 있을까? 흔히들 유태인이나 아시아인들이 공부를 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은 인도인들도 특히 이공계통 분야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구구단이 아니라 십구단을 외우는 민족이라 그렇다는 설도 떠돈다. 과연 공부를 잘 하는 민족이란 따로 있는 것일까? 공부 잘 하는 민족이 따로 있다는 관점은 민족성의 차이를 근거로 내세운다. 다른 민족들보다 더 낙천적인, 보다 적극적인, 보다 열정적인, 보다 저항적인, 남다른 민족들이 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삼별초의 항쟁, 의병활동, 독립운동 등만 봐도) 왕이 항복을 해도, 도망을 가도, 백성들이 끝까지 저항을 하는 (외국인이 보기에는 정말) 특이한 민족이다. 또한 학부모가 자녀의 대학교육을 가장 원하는 나라 1위이다. 문화적으로 스며들어 있는 정서, 가치관, 열정이 민족성에 따라 다르다. 이러한 차이가 학업성취도의 차이를 만들고, 따라서 공부 잘 하는 민족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유전적 근거로 보면 공부 잘 하는 민족이란 따로 없다. 개인차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다양한 개인들이 모인 집단의 학업성취도는 사회적 환경과 정책, 제도, 그리고 이를 운영하는 리더십의 문제이지, 특정 민족이 머리가 좋다는 식의 유전적 지능지수 문제로 말할 수 없다. 신체적 특징에 따라 특정 인종이 특정 스포츠를 대체로 잘하는 경우는 있으나 인지적 학습에 대해서는 특별히 더 우수한 민족이나 인종이 있다고 밝혀진 바는 없다. 특정 인종이나 민족이 우수해 보이는 것은 그렇게 교육되고 길러졌기 때문이지 유전적 특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앞서 말한 민족성의 차이라는 것도 인지적 지능지수의 차이가 아닌, 문화 정서적 성향의 차이이다. 혹자는 민족성의 차이 때문에 교육도 쉽게 바뀌지 않을 거라 믿는다. 그러나 교육은 제도와 정책의 문제이기 때문에 민족성과 무관하게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 제도와 정책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교육의 과정과 결과는 당연히 바뀐다.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의 저자 아만다 리플리는 최근 PISA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는 국가들(한국, 핀란드, 폴란드 등)이 원래부터 성적이 높을 만한 환경이었기 때문이 아니고 전혀 성적이 높을 환경이 아니었다가(거의 세계 최하위였다가) 짧은 기간 내에 세계 상위권에 오르게 된 이유에 주목하였다. 그녀는 교육이 문화의 한 부분이라면 문화가 이렇게 빨리 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을 품고 이를 파헤쳐 보고자 하였다. 그 결과, 교육 수준은 시간이 흐르면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극적인 변신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 왔다는 것이 드러났다. 특히 한국 전쟁 이후 전세계 최극빈국이었던 한국이 불과 몇 십 년 만에 극적인 경제 성장과 함께 학력 성장을 이룬 것을 근거로, 어떤 나라든 변화가 가능하다고 결론짓고 있다. 2012년 실시된 PISA에는 OECD 회원국 34개국, 비회원국 31개국 등 총 65개국의 만 15세 학생 약 51만명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도 무작위로 선정된 중3~고1 학생 약 5201명이 평가에 참여했다. PISA 시험은 단순히 정보나 지식의 기억 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상당히 비판적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것으로 검증되고 있다.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의 저자 아만다 리플리는 시험 문제 형태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할 속셈으로 본인이 PISA 지부에 가서 직접 시험을 치러 보았다. 그러나 문제를 직접 풀어보고 나서는 충분히 타당하고 내 아이가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답할 수 있다면 좋을 만한 시험이라는 것을 확인을 한다. 즉 단순히 교과내용의 확인 수준의 시험과는 차원이 다른 평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PISA에서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을 중심으로 PISA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비판하는 저항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PISA를 개발한 안드레아스 슐라이허가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다 하면 의자는커녕 바닥에조차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전세계의 교육전문가들이 빽빽하게 모여든다. PISA 결과가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신뢰를 받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러한 PISA에서 지속적으로 최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점수로만 보면 다른 나라에서 부러워할 만하다. 그런데 이 점수만으로 한국의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다고 판단한다면 큰 오산이다. 이렇게 신뢰받고 있는 시험인데 왜 PISA 최상위권 점수만으로 한국 교육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하는가? 우선,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PISA 시험은 15세 학생만 평가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중3 ~ 고1 학생들 대상이다. 대학입시 이전의 교육은 어느 나라에서든 대체로 수용적인 리터러시 (literacy) 교육에 크게 의존한다. 리터러시 교육이란 우리말로 '문해' 교육으로 번역되는데, 보통 읽고 쓸 수 있게 하는 교육을 말한다. 그런데 읽고 쓴다는 것이 단순히 글자를 읽고 쓰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고난도의 수학적 사고를 하려면 수학을 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숫자, 개념, 공식의 도출, 계산 등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이 수학의 리터러시 과정이다. 음악 활동을 하려면 음악의 기본 요소인 음정, 박자, 악보, 화성, 청음 등을 익혀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음악의 리터러시이다. 화학에서의 리터러시는 원자/분자 및 이들의 화학반응을 표현하는 화학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사회학에서도 그 분야에서 쓰이는 고유의 용어, 개념, 사고방식의 틀 등을 이해해야 한다. 이처럼 리터러시가 되어야만 그것을 바탕으로 그 학문 영역에서의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리터러시 교육은 사실 대학원에 가서 세부전공에 입문할 때도 여전히 필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훌륭한 박사라도 전혀 다른 전공 분야의 글이나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 용어와 개념체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리터러시가 안 되어 있다는 뜻이다. 초.중.고등학교 교육은 이러한 리터러시에 대한 의존도가 대단히 큰 시기이다. 그런데 이러한 리터러시 교육에서는 비판적, 창의적 능력보다 수용적 학습이 대단히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예컨대 아무리 뛰어난 화학 천재 능력이 잠재되어 있어도 기본적인 용어와 화학식을 완벽히 모르면 자신의 이해를 표현할 수 없고 평가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리터러시 교육 수준에서는 수용적 학습이 잘 되어 있는 학생이 비판적 사고 시험에서도 유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용적 학습만을 죽어라 공부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력도 측정한다는 PISA시험에서 우수한 결과를 얻었다고 해서 궁극적으로 비판적 사고 능력도 뛰어나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 중등 리터러시 교육 단계에서의 착시효과일 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학생들은 전세계 어느 나라 학생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과 분량을 공부한다. 그렇게 많이 공부하고도 이만큼의 점수가 안 나온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할 것이다. PISA 점수에서 우리나라와 최상위권을 앞뒤로 선점하고 있는 일본도 전국의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매년 전국학력고사를 실시하는데 PISA 연습용 시험이라 'PISA형 테스트'라 불린다. 뭔가 공평하지 않은 게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누구는 준비를 철저히 하고 시험보고, 누구는 전혀 준비를 하지 않고 시험을 본다. 다른 나라 학생들의 PISA 점수가 낮은 것은 우리만큼 시험 준비하는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이 잘 가르쳐서가 아니라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죽어라 시험 공부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인 것이다. 그래서 시험 점수는 세계 최상위권이나, 교과에 대한 흥미도나 자신감, 학교에서의 행복감은 명백히 전 세계 최하위권이다. 공부시간 자체가 가장 많은 나라 1위 한국. 단언컨대, PISA처럼 15세 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 어느 시점에서도 리터러시 시험을 보면 한국은 세계 1위일 것이다. 그런데 대학교육은 완전히 다르다. 리터러시 교육은 말 그대로 준비 단계의 교육이다. 대학에서도 리터러시 교육이 일부 존재하긴 하지만 그래도 대체로 대학 수준에서의 교육은 초.중.고등학교 교육과는 차원이 다른 교육일 것이라고, 학생도, 학부모도, 사회도, 기대한다. 주입식 수용적 학습보다는 보다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교육일 것이라고 우리 모두는 기대하고, 또한 대부분의 대학 홈페이지에 그렇게 교육목표로 선언되어 있다. 그런데 서울대 학생들을 조사해 보니, 비판적이고 창의적이면 A+를 받지 못하고 고등학교 때보다 오히려 더 철저히 수용적 학습자가 되어야만 A+를 받을 수 있더라는 충격적인 결과가 드러났다. 대학이 엉뚱한 능력에 A+를 주고 있었던 것이다. 수용적 학습이 특징인 우리 교육이 성인이 된 이후에까지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OECD에서 조사한 국제비교시험인 PIAAC (Programme for the International Assessment of Adults Competences)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PIAAC은 PISA와 유사한 국제비교 시험으로 세계 각국에서 16세부터 64세 연령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언어와 수리 부문을 평가한 것이다. PIAAC의 언어/수리 두 부문 모두 일본과 핀란드는 여전히 1, 2위이지만 한국은 OECD 평균 이하로 내려갔다. 더 이상 최상위권이 아닌 것이다. 중등교육에서 최상위권에 있던 우리나라가 어쩌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평균 아래로 내려 앉았단 말인가? 우리와 유사하게 PISA 최상위권을 차지했던 일본과 핀란드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한국교육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심각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PIACC의 결과나 서울대 학생들을 분석한 연구결과는 한두 명의 카더라 통신에 의한 개인적 의견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집단의 패턴이다. 한두 명의 성향이 아닌 집단의 일관된 모습이라면 그 집단을 이끄는 리더 그룹은 반드시 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유발하는 원인을 분석해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것에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노력 없이는, 50년 전의 대한민국이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예측하지 못했듯이, 오늘의 모습에서 앞으로 50년 후를 장담할 수 없다. 리더 집단의 잘못된 판단으로 나라를, 시대를, 말아먹은 경우가 역사에서 한두 번이 아니었지 않은가?


[출처: 중앙일보 2015.03.25.] "공부 잘 하는 민족이 따로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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