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아시안 패러독스 1) 아시아인들의 잘못된 공부법으로도 성적이 높은 이유

"아시아 학생 패러독스"라는 말이 있다. 서양에서 특히 궁금해 하는 건데, 유교문화권의 영향을 받는 동아시아 국가 학생들이 대체로 잘못된 공부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비판받고 있으면서도 국제 학력 비교 시험에서 왜 항상 성적이 더 높으냐는 것이다. 아시아권 학교에서 수업은 언감생심 학생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만무하고 교사의 권위에 맞서 질문을 하거나 비판적 사고를 배양하기 어려우며 교사로부터 전달된 지식을 수동적으로 흡수하고 외우는 수용적 학습만을 하는데, 즉 서양 교육의 관점으로 보면 매우 적절하지 않은 방법으로 공부하는데, 왜 한결같이 성적이 더 높으냐는 것이다. 국제 학력 비교 평가시험인 PISA (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 성적도 지속적으로 유교문화권 국가들이 상위권을 휩쓸고 있고, 서양의 명문대 입학생들 중에서 아시아 학생들의 비율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학생중심 교육으로 천문학적인 교육비를 쏟아 붓고 있는 서양 선진국들 내에서도 아시아 학생들은 초중고등학교를 넘어 대학입시에 이르기까지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고 인식되고 있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을 학자들은 아시아 학생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동서양 대학생들의 학습 접근 방식 차이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호주의 교육심리학자 존 빅스(John Biggs)는 그의 수년간 누적된 저서와 논문에서 서양인들의 눈으로 동양 학생들을 바라보는 것 중에 잘못된 인식을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빅스는 아시아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질문하거나 토론에 참여하거나 하는 등의 적극적인 참여가 현저하게 적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머리 속에서 아무런 학습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또한 반복적으로 학습하고 암기하는 방식의 교육을 서양에서는 이해하지 않고 단순 암기만 하는 매우 무식한 방법으로 부정적으로 보지만, 아시아에서는 오히려 외우면서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즉 암기를 이해의 한 도구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더라는 지적을 한다. 게다가 교실 앞에 나와 칠판에서 문제를 푼 학생이 잘 못 할 경우 교사가 그 틀린 부분을 계속 파고 들어서 가르치는 것을 아시아인들은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서양인들은 그 학생을 다른 학생들 앞에서 모욕을 준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러한 차이도 공부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방해가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빅스가 본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성공과 실패에 대한 책임 소재다. 아시아 학생들은 성공과 실패의 요인을 "자신의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서양학생들은 재능이나 소질이 없어서, 즉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의 저자 아만다 리플리의 지적과도 일치한다. 한국에서는 자기 자식이 머리가 나빠서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는 거의 없고, 대부분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 성적이 안 나온다고 인식한다. 부모든, 학생이든, 교사든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영미권에서는 성적이 안 나오면 그 분야에 소질이 없어서라고 생각하고 쉽게 포기하고 다른 분야를 찾으려 한다. 빅스는 아시아 학생 집단의 너무 높은 성적 때문에 서양 대학에서 오히려 아시아 입학생 수를 제한하기 위해 입시제도를 바꾸고 있는 예를 제시했다. 예컨대, 동양계 학생들의 우수한 성적 때문에 최근 미국의 여러 명문대에서는 캠퍼스에 동양계 학생들이 과다하게 많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들에게는 대입에서 더 높은 점수를 요구하는 등 역차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뉴질랜드의 최상위 의과대학들에서도 아시아 학생들이 인구 비율에 비해 과도하게 많아졌기 때문에 인종차별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인성평가를 대입에 평가한다고 선언하는 등 입시제도를 바꾸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호주에서도 아시아 유교문화권에서의 학생들이 두드러지게 고학점을 받고 있어서 교육 당국은 명문대로 갈수록 아시아 학생들이 과도하게 높아지는 비율 때문에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동양인들이 대학입시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유교문화권 학생들의 공부법이 잘못되었다고 보는 인식은 잘못된 편견이라고 빅스는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빅스는 아시아 학생들의 학습방법은 수업에서 주로 그것을 평가하기 때문이고 그 평가하는 것에 가장 잘 맞는 학습방법을 쓴 것일 뿐, 학생들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즉, 아시아 학생들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를 잘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들이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시아 유교문화권 수업에서 그것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수용적 사고력만을 평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빅스는 실제로 수업에서 무엇을 평가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에 대해 아시아 학생들이 뉴질랜드 학생들보다 훨씬 민감하게 찾아내고 반응하더라는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아시아 학생들의 소극적인 수업태도는 그들의 능력이 아니라 그렇게 길러진 것이기 때문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서양인들의 눈으로 아시아 학생들의 학습방식을 이해하는 것에는 상당히 잘못된 관점이 많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빅스의 이러한 주장을 잘 들여다보면 학교에서 비판적 창의적 사고가 길러지도록 교육되지 못하고 있는데, 그렇게 잘못된 학습방식으로 길러진 학생들이 결과적으로 왜 성적이 더 우수한지에 대한 설명은 못하고 있다. 왜 적절치 못한 학습 방식으로 공부를 했는데 더 성적이 좋은가 라는 아시아 학생 패러독스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답은 간단하다. 그냥 "압도적으로 더 많이" 공부하기 때문이다. 내가 있었던 앤아버에서도 한국인, 인도인, 중국인들이 공부를 잘 하는데, 이들 아시아인들이 일반 미국인들보다 정말 엄청나게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한다. 방법이 얼마나 효율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압도적으로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기 때문에 더 잘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다른 미국인들 중에도 열심히 노력하는 경우도 많이 있지만 그들이 열정을 쏟는 부분은 공부가 아니라 스포츠이다. 아시아인들은 어차피 스포츠를 한다고 해도 체력적 조건상 백인이나 흑인을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그냥 공부를 하는 것이 낫다는 인식이 많은 것도 공부에 몰입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이유는 아시안들이 공부를 더 잘 한다고 판단하는 시험의 시점 때문이다. 빅스와 유사한 관점을 가지면서 아시아 학생 패러독스를 언급하는 경우는 모두 대학입시 이전까지의 교육에 대해서만 말을 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PISA가 평가하는 15세까지의 교육이나, 고등학교까지의 성적으로 결정되는 대학입시까지는 비판적 사고력보다는 수용적 흡수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유리할 수 있는 평가가 비중이 클 수밖에 없다. 길게 보면 대학입시까지의 교육은 모두 입문 교육이기 때문에 지식을 얼마나 잘 수용했는지를 비중있게 평가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빅스를 비롯하여 아시아 교육 패러독스를 언급하는 경우 대학 고학년 이상의 교육에 대해 논하는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즉,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전체 교육 시스템 중에서 수용적 학습에 대한 평가 비중이 큰 초중고등학교와 대학입시까지의 교육에 대해서만 아시안학생 패러독스가 있다는 점이다. 대학입시의 결과로 대학 내에서의 아시아 학생들의 비율이 결정되기 때문에 명문대에서 아시아인들의 비율이 높다는 것은 대학입시 이전까지의 공부 결과일 뿐이다. 대학 이후 특히 고학년 이후에는 아시아 유학생들의 학점이 눈에 띄게 떨어지더라는 것이 미시간대학교 학생들의 분석 결과였다.    

나는 대학입시까지의 교육까지는 여전히 기초교육이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지식을 이해하고 흡수하는 수용적 학습의 평가가 어쩔 수 없이 크게 마련이고, 그래서 거기까지는 동양인들이 그들의 방법으로 공부를 해도 강세를 보이는 것이 충분히 설명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미국이 공교육이 부실해도 여전히 세계 최고의 교육 강국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유인 대학교육에서만큼은 동양인들의 교육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에서 다루고 있는 일련의 연구결과들이다. 요컨대, 서양의 제도 교육에서 아시아 학생 패러독스는 대학입시까지만 유효한 것일 뿐, 대학교육 이후까지 적용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출처: 중앙일보 2015.06.09.] "아시안 패러독스 1) 아시아인들의 잘못된 공부법으로도 성적이 높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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