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 하고 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고 해외사례와 비교하는 기사들이 연일 지상을 메우다시피 하니, 한국교육은 문제투성이의 미운 오리 새끼이고 외국의 교육은 이상적인 백조이기만 한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우리 교육은 문제만 있을까? 그렇지 않다. 우리 교육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거듭 언급할 만큼 세계가 부러워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바로 교육열이다. 미국 대통령이나 교육부 장관이 한국교육을 모델로 언급하는 경우가 언론에 나오면 엄청난 반박 댓글이 달리는데, 사실 그들이 한국교육의 장점으로 언급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교육열이지 한국의 교육과정 내용은 아니다. 한국의 한 중학교에서 원어민 영어교사를 한 후 한국 교육의 장점을 따서 미국 할렘가의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세워 성공시킨 사례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TV에 방영된 적이 있었다. 여기서도 역시 한국교육의 장점으로 가져간 것은 커리큘럼이 아니라 "교육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인식"이다. 돈, 권력, 직업, 행복, 명예, 커뮤니티, 출세 모든 것은 교육에서부터 나온다고 믿는 사회적 가치관이다.
지금이야 교육에 대한 이러한 사회적 가치관이 너무나 당연하게 퍼져있고 이것이 너무 과해서 사회문제가 되기까지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전 국민이 절실하게 갖지 못한 시절이 있었다.
필자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교육에 대해 누구보다 열정을 갖고 있던 어머니가 갓 부임하여 의욕 넘치는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하던 때는 1960년대였다. 그때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교육열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었나 보다. 어떻게 해서든 담임 반 아이들을 우수하게 교육시키기 위해 온갖 열정을 쏟아 부었던 시절. 농사 지을 아이에게 공부 많이 시킨다고 화가 나서 낫 들고 학교로 쫓아왔던 학부모가 종종 있었다고 하니,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교육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인식이 여러 부작용으로 나타나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그 인식이 교육을 향한 엄청난 열정과 동기의 원동력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전 국민이 자식 교육을 향해 전력 질주를 한다. 가난하든 부자이든, 못 배웠든 많이 배웠든, 잘 났든 못 났든, 거의 모든 부모가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라도 자식 교육을 시키고 싶어하는 그런 교육열이 있는 나라는 가히 우리나라뿐이지 싶다. 비슷한 대학입시열기가 중국이나 일본도 있긴 하지만, 일본은 대대로 하던 일을 자식 대에서도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여전히 있는데, 우리나라는 자식이 부모보다 더 나은 일을 하기를 바라는 부모가 훨씬 많다. 또한 중국은 공산국가라서 그런지 공부하는 이유가 국가를 위해서라는 의식이 큰 경향이 있다. 우리나라의 부모는 국가를 위해서 자식 교육을 시킨다기 보다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자식의 보다 나은 앞날을 위해서, 부모의 모든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다. 이러한 엄청난 교육열을 바탕으로 지난 수십년간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했다는 것은 분명 뿌듯하고 자랑스러운 일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교육열이라는 이러한 장점이 엄밀하게 말하면 우리 사회의 원동력일 수는 있었으나 우리 ‘교육’의 장점은 아니다. 한국교육을 수입해 간 외국의 학교들도 교육에 대한 열정을 본받으려 했지, "무엇을 공부하는지"까지 가져간 것은 아니었다. 엄청난 교육열을 바탕으로 우리의 교육 체계가 바로 서서 건강하고 진정으로 생산적인 바람직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지금은 갈 곳을 몰라 방황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지금까지의 우리 교육이 지난 산업사회에서 선진국을 따라잡는 교육으로는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이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이상 여기서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스스로 디렉션을 잡아 가야 하는 상황에서는 더 이상 누굴 따라 하는 교육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이구동성이다. 지난 50년간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보고 열심히 달렸다. 앞선 자를 보고 달린다고 다 잘 달릴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대한민국의 성취는 자랑스러워할 만하다.
그런데 우리가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지금, 이제는 누구를 보고 달릴 것인가? 어디로 갈 것인가? 노동집약적인 산업은 이미 중국과 베트남에 뺏긴지 오래다. 한 때 영광스러웠다가 조용히 영광의 자리를 내려 놓아야만 했던 나라를 우리는 역사에서 드물지 않게 봐오지 않았는가? 전교 꼴찌가 죽어라 암기과목 공부해서 전교 10등권에까지 올라가는 것은 가능할 지 몰라도, 전교 10등에서 전교 1등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더 이상 암기과목 만으로는 안 되는 것처럼, 최고 수준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종류가 다른 공부를 해야 한다.
혹자는 전세계 10등만으로도 충분한데 굳이 더 올라가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있느냐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가 차원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역사적으로 반만년 한반도 역사에서 광개토대왕 때 이후로 가장 국력이 강한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렇게 강했던 광개토대왕의 고구려도 이후 국제정세 변화와 리더십의 부재로 멸망했고, 세계를 제패했던 로마제국도, 몽골제국도 멸망했다. 세계대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은 세계 최강대국이 아니었었고, 한국은 세계에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었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 어떻게 세계 정세 변화에 발빠르게 대처하느냐, 어떠한 리더십으로 사회를 이끌어 가느냐, 어떻게 경쟁력을 키우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다. 가만히 있으면 전세계 10등 권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시 하위권으로 다시 추락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국민들은 오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잘못된 정책이나 상황에 가만히 순종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반발하고 저항하고 항쟁해 왔다. 그래서 정복 당했다고 민족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역사 속의 수많은 나라들과는 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사회에서는 누가 먼저 혜안을 가지고 미래를 예측하고 선점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좌우될 것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지난 수십년 간의 기적 같은 성장에 안주해서는 안되고 앞으로 우리 자손들에게 어떤 사회를 물려줄 것인가 심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서 앞으로 교육 이슈를 면밀하게 진단하고 분석하는 칼럼을 연재하기로 한다.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저자 이혜정
[출처: 중앙일보 2014.12.16.] 우리 교육은 미운 오리 새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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