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의 교육에 대해서는 그간 여러 매체에서 다루어 왔다. TV에서도 수 차례 방영되었고 교육 관련 서적에도 빈번하게 유태인 교육이 인용되곤 했다. 교보문고에서 유태인(혹은 유대인)으로 검색하니 국내도서만 총 246건이 나왔다. 개정판 등의 중복을 감안하더라도, 조기교육에서부터 초중등 및 대학교육, 이후 성인교육 및 비즈니스에 이르기까지 유태인 교육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와 관심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유태인은 인종이 아닌 종교로 정의된다. 즉 어떤 인종이든지 유대교를 믿고 유대교의 율법을 따르는 생활을 하면 유태인인 것이다. 유태인은 전 세계 인구의 0.2%, 미국 인구의 2% 뿐이지만 하버드대 등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의 20% 이상, 노벨상 수상자들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익히 들어본 수많은 내로라하는 기업들을 비롯하여 미국의 정치, 언론, 영화, 금융, 산업, 학문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 각국의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점수를 분석하느라 들여다보다가 우연히 발견한 사실. 그렇게 위대하게 칭송 받던 유태인들의 나라인 이스라엘의 PISA 점수는 정작 너무나 형편없었다. PISA 점수가 낮아서 큰일이라고 연일 떠들어대는 미국보다도 훨씬 낮았다. 아래의 표는 OECD 34개국의 PISA 점수 중 이스라엘의 순위를 다른 몇 나라와 비교할 수 있도록 제시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OECD 전체 국가 중 최하위권이었다. 그렇게 훌륭하다는 유태인 교육을 국가 공교육에 접목했을 이스라엘에서 PISA 점수는 왜 이렇게 낮은 걸까? PISA 2012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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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SA 2012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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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PISA성적에서 하위권인 이유는 역사적인 맥락부터 살펴봐야 한다. 이스라엘은 2차 대전 후에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치외교적인 노력으로 만들어진 나라이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서는 황당할 만하다.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이 2천년 전의 우리 조상 땅이었으니까 당신들은 나가라...' 라는 식인 건데, 우리로 비유해 보자면 예컨대 여진족이나 말갈족 같은 무리가 어느 날 갑자기 '2천년 전 고구려 이전에 우리 조상들이 여기 살았었으니까 당신들은 다 나가라...' 라면서 터줏대감 행세를 하는 격이다. 당연히 그곳에 조상 대대로 거주하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황당했을 것이다. 그럼 2천년 동안 살아왔던 사람들은 뭐란 말인가. 그러다 보니 그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미 살고 있던 많은 아랍인들과 다른 민족들이 대부분 쫓겨나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인구가 꽤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전 국민의 1/4이다. 그러니까 유태인들은 전 국민의 3/4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1/4의 아랍인과 소수민족들이 전체 학력 평균을 낮추는 영향이 매우 크다. 이를 지적하는 기사들이 이스라엘 언론에도 종종 나온다. 2013년 12월 3일자 예루살렘포스트 뉴스에 따르면, 이스라엘 우수학생의 비율은 OECD 국가 평균과 비슷하나, 성적이 저조한 그룹에 속하는 학생들의 비율이 OECD 평균에 비하여 매우 높은데, 그 이유가 유태인보다 아랍인들 중에 성적 저조자가 많기 때문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 기사에서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 중 31%만이 유태인이고 대다수인 67%가 아랍인이라고 보고하고 있는데, 이를 보면 유태인의 교육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아랍인들 때문에 국가의 PISA 점수가 낮아졌다는 주장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위대하다는 유태인의 교육방법을 적용한 이스라엘 교육에서 우수학생들의 비율 조차도 OECD 평균 정도밖에 안 되는 것은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는다. 이것 역시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이스라엘 건국 이후 세계 각국에서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은 속속 이스라엘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국민이 되었다. 그런데 새로 나라가 세워졌다고는 하지만 그 전까지 선진국인 구미 각국에서 자리를 잘 잡고 살던 사람들이 과연 2천년만에 조국이 세워졌다고 해서 번영한 선진국에서의 안락한 삶과 조상 대대로 일구어 놓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쉽게 이민 가겠다고 나설 수 있었을까? 2천년 전의 조국이라 하면 우리로 치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막 세워졌을 즈음이다. 입장 바꿔 우리라고 생각해도 어느 날 갑자기 2천년만에 조국이 새로 생겼다는데 2천년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수백년 동안 뿌리 내리고 살던 터전을 하루 아침에 버리고, 새로운 나라, 그것도 이제 막 건국되어서 한참 개발해야 할 나라로 쉽게 들어갈 수 있었겠나? 당연히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는 사람은 움직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부동산과 기반 사업 등 자산이 많은 사람들이나 대대손손 그 지역 유지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살고 있는 것보다 새로운 곳에서 보다 나은 삶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이주하게 되었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확실하게 기득권 층이 될 지도자 계층이나 아니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너무 희망이 없어서 벗어나고 싶은 사회 하층민들이 가게 되었을 것이다. 두 집단 모두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기대했을 때 이주한 것이다. 강제이주가 아닌, 집단의 자발적 이동은 동물의 자연섭리와 같다. 동물이 이동하는 것은 더 풍부한 먹이를 찾아 가는 것이다. 당연히 인간의 이주도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기대하면서 가는 것이다. 그게 경제적으로 나은 생활이든, 정치적으로 핍박 받지 않은 생활이든, 어쨌든 더 나은 환경이 기대될 때 이주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건국 후 인구 수를 늘려야 하는 필요성도 있었고 해서 세계 각국의 유태인들 이민을 적극 장려해 왔다. 북미나 유럽 유태인만으로 충분치 않아 아랍 지역이나 아프리카 지역의 유태인들도 이민자로 대거 받아들였는데, 그런 이유로 현재 이스라엘에는 같은 유태교인이라 하더라도 백인계 유태인, 아랍계 유태인, 흑인계 유태인 등 다양한 문화와 인종들이 공존하고 있고 이들 간의 갈등과 차별이 교육과 사회적 기득권 기회로까지 이어져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같은 유태인이라 하더라도 백인계 유태인은 사회 기득권층을 차지하고 있지만 아랍계 유태인이나 흑인 유태인들은 하층민을 형성하는 있기 때문에 다수의 이들로 인해 집단의 평균이 낮게 나타나는 것이다. 교육은 단순히 특정 교육방법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의 영향도 당연히 받는다. 환경이 열악하면 공부하기 힘든 것은 당연하다. 그러니 이스라엘에서 지도자 층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들어간 사람들은 당연히 소수의 식자층일 것이고 그들은 유대교육의 진수를 제대로 누렸겠지만, 다수의 사회 하층민들은 유태인이라 하더라도 그 교육에 제대로 매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요컨대, 이스라엘의 PISA 성적이 낮다고 해서 유태인의 교육도 국가 차원에서 보면 별거 아니구나 라고 지레 단정해서는 안 된다. 집단의 평균을 해석할 때는 집단의 역사 사회 문화적 특성을 다각도로 살펴봐야 한다. 미국의 PISA 성적이 낮은 것은 이전 연재 글에서 기술했던 것처럼 그들만의 보이지 않는 교육정책과 사회적 구조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는 반면(같은 북미라도 캐나다는 미국과 사뭇 다른 교육정책을 운영하고 있고 PISA에서도 미국과 달리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사례 역시 그 나라 국민이 구성된 역사와 사회적 맥락을 고려하여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점수로만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부러워하는 PISA 최상위권의 한국 교육, 결코 부러워할 만한 것이 아니다. PISA 최상위 점수라는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왜 안 되는지 다음 회에서 살펴보자.
[출처: 중앙일보 2015.03.09. 유태인의 위대한 교육? 그런데 이스라엘은 왜 PISA에서 하위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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