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일자리 전쟁 시대의 대한민국 교육

얼마 전 서울대학교에서 "일자리 전쟁시대의 대학교육"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움이 열렸다. 뉴스에서만 거론되던 청년실업 문제가 서울대학교에서도 남의 일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 같다. 실제로 내가 서울대에서 가르쳤던 제자들도 원하는 취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최근 점점 더 많이 본다. 단순히 명문대 졸업장만으로는 원하는 취업이 요원한 시대가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여러 다양한 통계들이 있지만 대략 평균을 내보면 요즘 대학 졸업생들은 둘 중 하나 이상은 원하는 취업을 제대로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한 통계에 의하면, 대학생 및 대학졸업생들을 대상으로 '대학 진학을 후회하느냐'고 물었는데 무려 75%가 '후회한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는 원하는 직업을 찾지 못해서, 즉 취업이 잘 안되어서였기 때문이란다.        이러한 문제를 주제로 하는 심포지움에서 여러 논의들이 오고 갔는데, 그 중에서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두 관점을 발견했다. 바로 대학교육이 취업에 도움이 되는 교육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슈이다.

어떤 이들은 작금의 대학교육이 기업에서 일하는데 도움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면서 대학교육이 기업이 필요로 하는 교육, 기업에서 쓸모 있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한다. 패널로 나온 한 교육부 관리는 취업을 잘 시키는 대학에 정부 지원금을 많이 주는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일자리전쟁 시대에 대학교육을 위해 정부도 노력하고 있음을 호소했다. 반면 다른 입장은 대학은 학문의 상아탑이지 직업교육을 하는 곳이 아니라면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교육은 기업 자체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주로 상위권 연구중심 대학 교수들의 관점이다. 우선 대학이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살펴보자. 사실 대학졸업생들은 취업을 못해 난리이지만 기업에서는 쓸만한 인재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왜 이런 불일치가 생겨나는 것일까? 현 시대와 사회에 요구되는 21세기 필수 경쟁력의 '역량'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의 수용에만 고학점으로 보상하는 현재의 대학교육이 문제이다. 오늘날과 같은 급변하는 시대에 특정 지식과 정보가 필요한 분야라 할지라도 스스로 생각하는 힘이 없으면 조금도 응용을 할 수 없고 미시적으로 시키는 일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대학에서는 본인이 직접 생각해낸 무엇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교수나 교과서에 있는 지식을 전달된 그대로 숙지하고 기억해 내는 것에만 고학점을 주고 있고 있다고 연구결과들이 보고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고학점자의 인재들도 시대의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축구를 잘 하려면 근력도, 지구력도, 기술도 필요한데, 그저 박지성이 공 차는 비디오 화면만 수천번 보고 시험 보는 방식으로는 자신의 근력, 지구력, 기술 무엇 하나 제대로 기를 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회에서는 분야 전문 지식도 필요하지만, 상황을 올바르게 분석하는 능력, 팀원들과 협업하는 능력, 문제를 해결하고 처리하는 능력, 이슈를 발굴하는 능력, 상사 및 동료와 소통하는 능력, 비판적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 등이 모두 중요한데, 이러한 역량들은 초/중/고등학교 교육을 비롯해 대학교육에서도 전혀 온전히 길러지지 않고 있다. 그러니 대졸 고학력자는 차고 넘쳐도 진정 인재는 없다고 아우성이다. 따라서 기업은 대학에 자신의 회사에 필요한 특정 기술과 지식을 가르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회사 특정 기술과 지식은 기업교육으로 접근하고 대학에서는 21세기 필수 역량을 길러 오기를 기대해야 한다.     대학이 직업교육을 시키는 곳이 아니라는 관점도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는 큰 소리 칠 입장이 못 된다. 물론 대학에서 특정 기업의 사내 교육과 같은 수업을 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게 치열하게 학문을 배워도 졸업하고 직장이 없을 때 본인이 새로운 판을 짤 수 있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기른다면 그 역시 제대로 된 대학교육이라 할 수 없다.

혹자는 대학은 기업체 취업을 위한 사람들이 아닌 오직 학자만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이라 비판하기도 하는데, 나는 학자 양성조차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자신이 스스로 발굴한 자신만의 연구문제를 가지고 자신만의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교수의 관점, 논리, 용어, 지식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외우는 학생에게 고학점을 주는 현 평가 체제 하에서는 대학교육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심포지움 주최측에서 내게 발표를 요청한 주제가 "서울대 A+는 무엇이 우수한가?"였다. 발표의 요지는 학문 분야에서도 기업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단순 지식 수용의 능력에만 서울대가 A+를 주고 있다는 연구 결과였다. 발표가 끝난 후, 청중석에서 한 서울대 재학생의 질문이 나왔다.   "저는 원래 질문도 많고 아이디어도 많은 학생이었는데 그렇게 질문 많이 하고 창의적으로 과제를 해보니 학점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얼마 전 군대 갔다 와서 복학 후 서점에서 우연히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책을 발견하고 그 책에서 A+학생들이 했던 공부방법 그대로, 교수님의 말씀과 관점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베껴 쓰고 외우고 시험을 보니 정말 A+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는 더 이상 공부가 즐겁지가 않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즐겁지 않은 공부를 해야 합니까?" 어디 이 학생 하나뿐이랴. 불만을 호소할 기회조차 없는 수많은 학생들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교육당국자들은 귀 기울여야 한다.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경쟁력 있는 인재 양성만이 대한민국이 살 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은 구국의 결단으로 리셋해야 한다.



[출처: 중앙일보 J Plus. 2016.10.27.] "일자리 전쟁 시대의 대한민국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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