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총선 교육공약에 '교육'이 없다

며칠 전 중학교에 갓 입학한 둘째의 수업 참관을 다녀왔다. 이번 학기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사항으로 올해부터 모든 중학교에 전면 도입된 자유학기제 실시로 인해 시험이 없다.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운 교사와 아이들의 수업은 어떨지 내심 기대가 되었다.   필자가 참관했던 수업은 도덕, 기술, 국어, 세 과목이었다. 입학 후 처음 학부모들에게 공개하는 수업이니 잘 준비된 모범 수업일 터였다. 그런데 나는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첫번째 도덕시간. 교사는 학생들에게 '예절이 무엇인가' 질문했다. 학생들이 이런 저런 답변을 했는데 교사는 그것 말고 다른 답을 계속 유도했다.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자 "예절이 뭐+뭐라고?"까지 유도했다. 그러자 몇몇 학생들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정신+형식"이라고 외쳤다. 교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학생들에게 "예절=정신+형식"이라는 문구를 복창시켰다. 집에 와서 아이에게 예절이 뭐냐고 물으니 기계적으로 '정신+형식'이라고 답했다.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으니 답을 못했다. 예의는 뭐냐고 물으니 그건 배우지 않아 모른단다.  그뿐이 아니다. 두번째 기술시간. 발명과 창의적 활동의 필요성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칠판 앞 스크린에 파워포인트로 발명과 창의적 활동의 필요성이 세가지로 정리되어 있었고 학생들은 그것을 암기할 때까지 복창했다. 실제 발명과 창의적 활동이 왜 필요한지 뭐에 좋은지 자신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논의하는 시간은 전혀 없었다. 집에 와서 아이에게 창의적 활동이 왜 필요한지 물으니 수업시간에 외웠던 세가지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쩔쩔맸다. 수업에서 제시되었던 그 세가지가 기억나지 않으면 아이는 스스로 아예 답을 모르는 것으로 간주했다. 다른 방식의 답이라도 생각조차 하려 들지 않았다.  주요 과목은 어떨까. 세번째 국어시간. 이 학교에서 국어는 아이들이 가장 졸지 않는 인기수업이라고 했다. 듣던 대로 국어교사는 인터넷 명강사처럼 목소리도 우렁차고 달변이었다. 아이들은 대부분 졸지 않고 집중을 했다. 그런데 수업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의고사 프린트 푸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문학작품들을 빈칸 채우기와 단답형 문제를 푸는 방식으로 이해를 했다. 답지가 따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정신 없이 교사의 답을 받아 적어야만 했다. 교사가 말이 빠르고 매우 서둘러 진도를 나갔기 때문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아이들은 답을 받아 적을 수가 없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일사불란하게 학생들은 속기를 했다.  어느 수업에서도 학생들이 '생각'하는 시간은 없었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무슨 능력을 기르고 있는가? 알파고 시대에 대응할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고 그렇게 부르짖어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공교육에서는 아이들의 '생각하는 힘'이 아니라 정해진 정답을 입력하고 정해진 정답 이외의 답은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인공지능에 백전백패할 인력들만 양산하는 수업을, 교육이 아닌 기계적으로 사육하는 수업을, 잘 준비된 모범 수업이라면서 학부모에게 자신있게 공개하고 있었다. 그것도 심지어 시험이 없는 자유학기제 대상 수업이 말이다.  공교육이 이렇게 망가졌는데도 총선에서는 누구도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말하지 않는다. 각 당의 교육공약에는 '교육'이 없다. 모두 복지공약뿐이다. 무상교육, 반값등록금 등은 교육정책이 아니라 복지정책이다. 현재 한국의 교육은 저소득층에게만 문제가 아니라 공교육 속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엉뚱한 능력만을 열심히 기르고 있는 이상한 교육 자체가 가장 큰 문제인 건데, 아무도 이 문제는 지적하지 않고 그 이상한 교육을 돈을 얼마나 내고 받느냐에만 관심이 있다.  새누리당은 지역아동센터에서 대학생들이 학원교사 대신 가르치게 함으로써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고 한다. 학교 밖에서 추가로 교육을 시키겠다는 것은 공교육이 부실한 것을 대놓고 인정하고 있는 것인데도 공교육을 바로 세울 생각은 어디에도 없다. 더민주당은 취학자녀 돌봄 휴가제 등 국가의 '보육' 책임을 강조하면서 '교육'에는 아예 눈을 감았다. 국민의당은 입시제도를 내신과 수능만으로 단순화하겠다면서 우리교육이 무슨 능력을 기르든 간에 한 가지 잣대로만 줄 세우면 그게 공평인 줄 안다. 정의당도 완전무상 교육만 강조하며 '교육'이 어떻든 간에 무상이기만 하면 된단다.   어디에도 '교육'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공약은 없다. 공교육을 바로 세울 생각은 하지 않고 사교육을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 그 비용을 경감해주겠다는 주장이나, 대학교육이 어떤 능력을 기르고 있는지 점검하는 시스템에는 무관심하면서 대학등록금만 줄여보겠다는 주장이나, '교육'을 정상화하려는 공약들이 아니다. 그러니 각 정당들이 주장하는 소위 교육공약이라는 것들이 모두 실현된다고 하더라도 '교육'은 바로 서지 못한다. '교육'의 본질과 전혀 상관없는 공약들이기 때문이다.  교육공약은 무슨 능력을 어떻게 기를 것인지에 대한 담론이어야 한다. 국가가 전국민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시스템에서는 국가가 국민에게 무슨 능력을 기르는 교육을 시킬지 국민적인 공감대와 합의에 기반해야 한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교육을 국가가 합당한 이유 없이 강제한다면 이야말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설령 교육과정의 목표들이 훌륭해도 그것을 제대로 배우지 않고 잘못된 평가 방식 때문에 엉뚱한 공부만 하고 있다면 이를 점검하고 감시할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시대와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이 아닌 엉뚱한 공부를 전국적으로 하고 있다면, 그것도 공교육을 넘어 엄청난 사교육까지 죽어라 하느라 아이들을 세계에서 가장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면, 게다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공부하고도 노벨상은커녕 세계 속에서 역량을 발휘할 유능한 인재를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고 있다면, 그리하여 청소년들의 높은 자살률과 나라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저출산을 초래하고 있다면, 이것은 국가가 심각하게  위태로워지는 문제다. 그런데 왜 다들 침묵하고 있는가?


[출처: 중앙일보 J Plus. 2016.04.13.] "총선 교육공약에 '교육'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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