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육의 구조가 99%의 대중교육과 1% 엘리트 교육을 구분 짓고 99%가 1%를 부러워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정 기간 미국에서 자녀를 학교에 보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한국에서보다 훨씬 행복해하고 건강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고 앞다투어 미국 교육을 찬양하기도 한다.
필자의 아이들 역시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한국에 있을 때보다 밝아지고 자신감에 넘치며 적극적인 성향으로 바뀌게 되었고 무엇보다 학교를 좋아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그러한 변화를 직접 지켜보면서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 미국 교육이 참 부러웠다.
그런데 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동시에 미국 사회의 일반적인 서비스 질이 한국보다 모두 너무 느리고 전문적이지 않으며 답답한 경우 또한 흔히 경험한다. A/S 같은 것도, 자동차 정비도, 인터넷도, 콜센터 직원도, 마트의 캐시어도, 모두 미국에서보다 한국에서가 훨씬 빠르고 스마트하게 일한다는 것을 절감한다. 이것이 두 나라 기초 공교육의 수준 차이이다.
여전히 미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비를 투자하고 있고 환경이나 시설 면에서는 다른 나라들보다 많이 앞서 있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예산을 가지고도 세계 최고 수준의 공교육을 하지 못하고 있는 미국의 실정은 연이어 계속 체면을 구기고 있는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essment,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 성적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아만다 리플리는 저서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에서 이와 관련한 미국 교육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파헤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적은 머리보다 노력으로 이루어 내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노력의 부족을 탓하고 모두 더 노력해야 함을 당연하게 강조한다. 그런데 이것을 아만다 리플리는 한국 교육의 독특한 특징으로 기술하고 있다. 즉 미국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뭔가 당연하지 않은 인식이었던 것이다.
아만다 리플리는 미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이 학습 능력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 수학은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배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일부 재능 있는 사람만이 잘 할 수 있는", 음악과 미술과 같은 영역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학과 같은 특정 과목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아카데믹한 공부에 대해서도 비슷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수학 성적은 아이들의 미래를 예측하는 기능이 있다고 여러 연구들에서 보고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부모의 경제적 소득 여부에 가장 영향을 받지 않는 과목이 수학이라고 보고된 바 있다. 즉, 대학입학시험에서 수학의 비중을 높일수록 계층의 세습 고착화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수학 능력은 타고 나는 선천적 능력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수학을 못하면 그냥 소질이 없는 것으로 치부하며 아주 초기부터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미국의 조기교육 프로그램은 모두 읽기, 그리기, 만들기 등에 치중할 뿐 수학에 관련된 부분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다.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수학을 가르칠 수 있고 심지어 체육교사와 수학교사를 겸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처럼 교사 자체가 수학에 대해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수학을 잘 가르칠 수 없고 따라서 아이들도 수학을 잘하게 되기 어렵다는 것이 아만다 리플리가 지적하고 있는 미국 수학교육의 문제점이다.
수학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교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미국에서는 공부란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잘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공부에 재능과 흥미가 있는 일부 아이들만 잘 할 수 있는 종류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우리보다 매우 강하다. 그리하여 성적이 나쁜 아이들에 대해 아이들 본인도, 학부모나 교사들도 모두, 공부에 흥미와 재능이 없어서 공부를 못 하는 것이므로 좀더 흥미와 재능을 보이는 다른 분야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즉, 일찍 포기하게 만든다.
성적이 안 나오는 건 노력을 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더 노력을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 하에 (교사들이건 학부모건 학생들이건, 성적이 높든 낮든) 모두가 어떻게든 성적을 올리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려고 하는 한국교육의 인식과 많이 다른 부분이다.
[출처: 중앙일보 2015.01.05.] "미국 공교육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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