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죽은 말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

수년 전 하와이의 동서문화센터에 초청받아 미래의 대학교육 정책개발을 위한 리더십 연수를 받았을 때 매우 인상 깊었던 수업이 있었다. 수업을 이끌던 교수는 필리핀 출신으로 유네스코 기초교육국에 몸담고 있던 빅토르 오르도네즈(Victor Ordonez). 한눈에 봐도 세계 교육을 걱정하는 열정과 전문성이 느껴지는 학자이자 실천가였다. 그의 강연 내용 중에 흥미로웠던 한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잘못된 국가교육 정책을 개선하려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이다. ‘죽은 말(Dead horse)’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로, 죽은 말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등장해서 갖가지 방법들을 동원하는 내용이다. 원래는 만화처럼 모두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 그 많은 장면들을 실을 수 없어 대신 글로 묘사하겠다. 장면 1 학교 건물 앞에서 어떤 신사가 말 위에 올라타 있다. 학교 울타리 한쪽 뒤에서는 한 꼬마가 이 장면을 엿보고 있다.  장면 2 신사가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주저앉는다. 죽었는지 눈을 뜨지 못한다. 장면 3 한 사람이 “말이 일어나지 않으니 좀 더 큰 채찍이 필요할까요?”라며 채찍을 가지고 온다. 말은 여전히 눈을 못 뜬다. 장면 4 다른 사람이 “말이 좋아하는 먹이인 당근을 가져왔어요”라며 당근을 말에게 먹이려 한다. 말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장면 5 또 다른 사람이 “성공적으로 말을 일으켜 세운 다른 학교들을 방문해서 벤치마킹 하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제안한다. 말은 여전히 엎드려 있다. 장면 6 또 다른 사람이 “좀 더 경험 많은 기수를 데려옵시다”라고 말한다. 말은 변화가 없다. 장면 7 또 다른 사람이 “죽은 말을 어떻게 일으킬지 연구할 위원회를 소집합시다”라고 한다. 말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장면 8 또 다른 사람이 “제 생각에는 죽은 말을 어떻게 타는지 표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라고 한다. 말의 눈은 계속 감겨 있다. 장면 9 또 다른 사람이 “말의 평판을 평가하는 것이 어떨까요?”라고 한다. 말은 그대로이다. 장면 10 또 다른 사람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공동으로 대응하도록 합시다”라고 한다. 말은 변화 없이 똑같은 자세다. 장면 11 또 다른 사람이 “면밀한 조사 결과, 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 결과가 나왔습니다”라고 한다. 말은 그대로 굳어 있다. 장면 12 또 다른 사람이 “근본적인 문제는 이렇게 말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만든 어릴 때의 영양부실이에요”라면서 과거를 문제 삼는다. 말은 전혀 반응이 없다. 장면 13 또 다른 사람이 “이 문제는 사실 예산 부족 때문입니다. 여기에 보다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합시다”라고 하면서 돈가방을 들고 온다. 말은 요지부동이다. 장면 14 또 다른 사람이 “말이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말을 모는 기수의 역량이 모자라서입니다. 기수들의 역량 평가를 시행합시다”라고 하며 평가 서류 더미를 들고 온다. 말은 깨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장면 15 또 다른 사람이 “제 생각에 이 말에게는 정부 차원의 보조가 절실합니다. 필요하면 국제 공조도 요청할 수 있어요”라며 정부지원금을 양손 가득 들고 온다. 말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다. 장면 16 그때 처음부터 이 장면을 울타리 뒤에서 엿보고 있던 꼬마가 “제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알아요! 말을 탔는데 그 말이 죽었으면 그냥 내리면 되잖아요! 그리고 다른 새로운 탈것을 구하면 되잖아요!”라고 소리친다. 장면 17 마침내 신사는 죽은 말에서 내려 자동차에 새로이 올라탄다. 장면 18 죽은 말은 관에 넣어져 장례식이 치러진다.

만약 당신이 말을 타려고 하는데 말이 죽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지혜로운 해결책은 죽은 말에서 내려서 새로운 말이든 아니면 자동차처럼 다른 새로운 탈것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죽은 말을 살리려고 헛된 노력들을 종종 한다. 물론 선의의 의도겠지만 현실적인 해결이 나오지 않는 방법으로는 앞으로 한 걸음도 나갈 수가 없다. 오늘날 국가 차원의 학교 시스템들에서는 이런 식으로 죽은 말을 타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말도 안 되는 개혁에 가장 고통받고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결국 학생과 교사이다. 그러므로 이야기 속의 저 꼬마가 했듯이 우리는 다른 탈것을 찾으라고 외쳐야 한다. 언제까지 죽은 말로 계속 달리려는 시도만 하고 있을 것인가?

-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중에서 -



[출처: 중앙일보 J Plus. 2016.09.28.] "죽은 말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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