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사례에 대한 찬사가 지나친 것 아닌가요?" 서울대와 미국 미시간대 교육을 비교 분석한 책 출간 이후, 모 대학 교수라고 밝힌 독자의 질문이었다. 분명 책에서 거듭 강조를 했는데도 여전히 눈에 잘 띄지 않았던 모양이다. 필자의 불찰이다. 한국교육과 미국교육을 비교할 때 초?중?고등학교 공교육과 대학교육은 뚜렷하게 구분해야 한다. 대학교육에 있어서는 다른 지표가 어떻든 간에 교실 내 수업의 질로만 본다면 한국의 대학이 우수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초?중?고등학교의 공교육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필자 역시 한국의 압력밥솥 같은 교육을 탈출시키고 싶은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미국의 아동중심 교육을 동경하고 왜 우리는 저렇게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을 할 수 없나 부러워하던 때가 있었다. 특히 남의 이야기로만 듣다가 내 아이가 실제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변하는 모습을 직접 보게 되면, 막연한 동경을 넘어 종교적 신념 수준으로까지 미국식 교육을 지지하게 된다. 그런데 미국 교육을 연구하면 할수록 뭔가 속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아동을 존중한다는 명분 아래,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명분 아래, 아이들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성취할 기회는 은연 중에 박탈 당한다. 아이들이 앞선 지식이나 미래를 알지 못하는 어린 나이에 그 수준에서 흥미 있어 하는 얕은 분야를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인식시킨다. 다소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보자. 어린 남자 아이들은 대체로 수학 공부하는 것보다 장난감 자동차를 더 좋아한다. 그러면 미국의 초등 교육에서는 "너에게는 수학보다 자동차에 재능이 있나 보구나" 하면서 수학은 안 해도 되는 것으로 인식시키고 자동차는 계속 가지고 놀게 한다. 그러면서 그 아이는 결국 자동차 정비소의 말단 조수가 된다(자동차 정비공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가능성을 조기에 포기시키는 미국 공교육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같으면 장난감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시간을 제한하면서 교과공부를 더 하도록 시킬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서도 계속 자동차에 관심이 있다면 아마도 한국의 학부모들은 일단 자동차와 전혀 상관없는 다른 교과도 모두 열심히 공부하게 해서 우수한 성적을 얻게 한 후(전과목을 다 잘해야 하는 것은 미국 대학 입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중에 좋은 대학의 기계공학과에 보낼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미국 교육계를 강타했던 예일대 에이미 추아 교수의 타이거맘 주장에 대한 미국민들의 반응을 보면 위의 사례가 지나친 단순화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에이미 추아 교수는 아이의 흥미를 존중해서 아이가 잘하는 것을 시켜야 한다는 일반적인 미국민들의 인식을 반박한다. 아이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를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어릴 때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배우고 연습해서 잘하게 되면 좋아하게 되고 좋아하게 되면 더 열심히 해서 결국 더 잘하게 되는 사이클로 이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 잘하게 되기 전까지 아이가 중간에 연습을 게을리하면 부모가 벌을 주고 야단치고 재촉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게 부모와 교사의 역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지나치다 싶을 만큼 그렇게 하고 있는 대부분의 우리에게는 전혀 새로울 것도 없지만, 미국 교육은 워낙 아동중심적이다 보니, 에이미 추아 교수의 이런 주장에 대해 아동학대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상당수의 미국민들이 연일 반론을 펼쳤다. 아이의 행복할 권리를 박탈하는 가혹한 처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행복하도록 존중되었던 99%의 미국 아이들은 미국 교육의 실질적인 경쟁력을 지닌 최상위 명문대에 결코 진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공교육 시스템에서 잘 따라가는 것만으로는 결코 미국 최상위 명문대에 진학할 수 없다. 트랙이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공부를 더 많이 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종류가 다른 공부를 해야 한다. 전국의 학생들이 같은 종류의 공부를 죽어라 치열하게 더 많이 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경우와 사뭇 다르다. 대입시험 후 늘상 성공사례로 보도되던, "교과서와 학교공부만 충실히 했어요"라는 우리나라 학생들 같은 사례는 미국의 최상위 명문대에서는 불가능하다. 공교육에서의 교과서와 학교공부만으로는 원천적으로 진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행복한 얼굴 뒤에 숨은 미국 공교육의 실체. 대다수 국민들을 우민화하지만 마치 이를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인식하게 해서 스스로 만족하게 만드는, 어떻게 보면 정말로 무서운 기만 정책이다. 부의 격차보다 무서운 것이 꿈의 격차라 하지 않던가? 미국 교육에서는 학생들로 하여금 꿈조차 꾸지 않게, 부러워하지조차 않게 그렇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수년 간 이러한 내용을 서울대 강의에서 다루면서 학생들과 난상 토론이 오고 갔었지만 미국공교육의 이러한 보이지 않는 기만적인 교육정책의 관점을 간파한 학생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더군다나 십수년간 많은 미국인들과 교류하면서 교육이슈들을 치열하게 토론하곤 했었는데, 미국인의 입에서 이런 관점을 직접 들어본 적도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미국인으로서 이 점을 간파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그가 『무엇이 이 나라 학생들을 똑똑하게 만드는가』의 저자 아만다 리플리였다. 그녀는 한국교육과 미국교육을 비교 분석한 후 다람쥐 쳇바퀴 같고 압력밥솥 같은 한국교육과 다양성을 존중하여 아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는 미국교육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망설이면서도 결국 쳇바퀴의 한국교육을 선택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가 한국교육이 가차없고 과도하긴 하지만 더 "정직하다"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초?중?고 교육 시스템이 대부분의 국민들이 간파하지 못하게 정직하지 않다는 느낌을 가진 것이 외국인인 필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국교육 vs 미국교육, 어느 쪽이 더 정직한가? 처음부터 꿈조차 꾸지 못하게, 부러워하지 조차 않게 만드는, 아예 처음부터 목적지부터 다르게 기르는 미국 교육이 더 정직한가? 아니면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리게 하긴 하지만, 누구에게나 꿈과 희망을 갖고 전력질주를 하게 하지만, 결국 고생 고생해서 산을 올라보니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어차피 몇 개 없었던 구조를 속인 한국교육이 더 정직한가? 막상막하다.
[출처: 중앙일보 2015.01.20.] "한국교육 vs 미국교육, 어느 쪽이 더 정직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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