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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TV는 바보상자? 그럼 강의는?

"그 그래프 진짜예요? 출처가 어디예요?"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책이 출간된 이후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기해 하면서 원문 출처를 알려달라고 한 그래프이기 때문에 여기에 다시 소개한다. 필자가 미시간대학교에 있을 당시 하버드대학교 물리학과의 에릭 마주르 교수가 미시간대학교 교수들을 대상으로 강의개혁 특강을 하는 자리에서 처음 소개했던 그래프이다. 이 그래프를 소개했을 때 미시간대학교 교수들도 모두 놀라면서 웅성거렸었다. 출처를 찾아보니 MIT 미디어랩에서 연구한 것인데, 교감신경을 측정할 수 있는 기기를 몸에 부착하고 일주일 동안 일상 생활의 패턴에 따라 교감신경계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추적한 것이다.


Poh, M.Z., Swenson, N.C., Picard, R.W. (2010). “A Wearable Sensor for Unobtrusive, Long-term Assessment of Electrodermal Activity”, IEEE Transactions on Biomedical Engineering, 57(5), 1243-1252.

이 연구는 원래 수업 중에 학생의 교감신경이 어떻게 활성화되는지를 보려는 목적으로 수행된 것이 아니고, 몸에 부착하는(입는) 기기로 일상의 교감신경계 변화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연구였다. 우연히 시범 측정한 결과에 학생의 일상 일과에서 교감신경계 변화 패턴이 기록되었을 뿐인데, 그 결과가 강의실에서 학생들이 어떤 상태로 앉아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집중, 각성, 흥분, 깨어 있음, 긴장 등이 증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감신경계가 불활성화된다는 것은 그야말로 아무런 각성이 없는 상태, 좀 과하게 말하면 멍~하니 있는 상태인 것이다. 본인이 적극적으로 집중하고 깨어 있는 것이 아닌,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프 왼쪽을 보면 본인이 직접 실험을 하거나 숙제나 공부를 할 때는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됨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잠을 자는 시간에도 특히 초반부에는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된다. 초반에 잠을 잘 못 이루거나 중간에 뒤척이면서 잠이 잘 안 올 때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재미있는 것은 왼쪽의 TV 시청하는 부분에는 교감신경계가 완전히 불활성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TV시청은 엄청난 분량의 시청각적 자극을 접하는 것인데, 그럼에도 교감신경계가 깨어 있지 않다는 것은 TV가 바보상자라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결과이지 않을까? 그러나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바로 오른쪽의 "수업" 부분이다. TV시청처럼 교감신경계가 불활성화되어 있다. 스스로 적극적으로 임해야 하는 숙제나 공부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지어 수면 중일 때보다도 더 불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참 웃지 못할 결과이다. 수업 중에 학생들은 집중하고 깨어 있고 긴장하고 각성한 상태가 아니라 TV를 볼 때처럼 그냥 아무 각성이 없는 상태로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주르 교수는 저 그래프의 결과가 우연히 잘 가르치지 못한 지루한 수업이었기 때문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교수가 앞에서 매끄럽고 유창하게 잘 진행하는 강의이든지 버벅거리며 어색하게 잘 못하는 강의이든지 상관없이, 수업 형태 자체가 교수가 전달하는 일방향적인 "강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한, 실질적 학습효과에는 그다지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또 다른 연구결과를 살펴 보자. 아래의 두 이미지는 미국 심리학자 카펜터의 연구팀이 실험한 장면인데, 왼쪽의 이미지는 매우 유창하게 매끄럽게 청산유수로 강의하는 동영상의 한 장면이고, 오른쪽 사진은 강의록을 보면서 매우 더듬거리는 어수룩한 강의 동영상의 한 장면이다. 유창한 강의는 강의 내용이 체계적으로 잘 조직화되어 있고 세밀하게 잘 준비된 것인 반면, 오른쪽의 어수룩한 강의는 조직화나 체계화도 잘 되어 있지 않고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강의였다.

Carpenter, S. K., Wilford, M. M., Kornell, N., & Mullaney, K. M. (2013). Appearances can be deceiving: instructor fluency increases perceptions of learning without increasing actual learning. Psychonomic bulletin & review,20(6), 1350-1356.

카펜터 연구팀의 연구에서 강의동영상을 본 학생들의 강의평가(코스에 대한 만족도 평가)는 왼쪽의 유창한 강의가 오른쪽의 어수룩한 강의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또한 강의 직후 학생들에게 배운 내용을 얼마나 잘 기억할 수 있겠는가를 질문했는데, 유창한 강의를 본 학생들은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 강의내용 분량(%)이 어수룩한 강의를 본 학생들보다 두 배 이상 많게 응답했다. 그런데 실제로 강의내용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평가한 시험에서는 두 집단 간에 차이가 없었다. 즉 유창한 강의를 본 학생들이나 어수룩한 강의를 본 학생들이나 그 강의의 내용을 이해하여 기억한 정도는 결국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 강의라도 그것이 곧 학습효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수 있으며, 학생들의 강의만족도 인식이 사실은 그렇게까지 신뢰로운 팩트는 아니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강의를 유창하게 잘 해도 문제라니? 그럼 어쩌란 말인가? 이 연구들은 수업방법이 교수의 강의로만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유창한 강의 후 가장 많이 배운 사람은 어느 학생도 아닌 바로 교수일 것이다.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공부법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나 아무리 청산유수로 강의를 한다고 하더라도, 아무리 강의만족도가 높더라도, 그 방법이 일방향적인 "강의"인 한, 학생들의 배움은 더 나아지지 않는다.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말하고 참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교수의 전달을 수용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관점도 생각해 내야 하고, 주어진 질문에 대한 답만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지 않은 질문을 발굴해 내야 한다. 이러한 것이 허용되고 독려되고 평가되는 수업이어야 한다. 그래야 수업시간에 학생들의 지각이 깨어 있게 된다. 학생들이 청산유수인 강의에서 졸지 않고 재미있게 듣는다 해서 깨어 있는 것이 아니다. 졸지 않고 재미있게 보는 TV를 왜 바보상자라 하겠는가?



[출처: 중앙일보 2015.07.09.] "TV는 바보상자? 그럼 강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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