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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아시안 패러독스 2)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의 차이?

"아시안 학생 패러독스"란 아시아 학생들이 잘못된 학습법으로 공부를 해도 왜 성적이 더 좋으냐 하는 역설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 현상에 대해 서양에서는 여러 학자들이 연구를 했는데, 그 원인을 동서양 학생들의 사고 방식 차이 때문이라고 분석한 연구가 있다. 비비안 룬(Vivian Lun)과 그의 동료들은 '비판적 사고에서의 문화 차이 탐색'에 관한 논문에서, 뉴질랜드 대학의 아시아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 학습을 잘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 이유가 비판적 사고 학습을 위한 '스킬(공부방법)'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비판적 사고'력'이 부족한 것인지를 확인하고자 했다. 룬은 단순히 교실에서의 참여가 소극적이라고 해서 비판적 사고력이 낮다고 단정해서는 안되고, 겉으로 보이는 말과 행동 이외에 머리 속에서 일어나는 것까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러 변수들을 고려하여 분석한 결과, 룬은 아시아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서양학생들과 "사고하는 방식"이 다르고 비판적 사고를 위한 "공부법"을 훨씬 덜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룬은 특히 동양학생들이 서양학생들과 사고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는데, 아시아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를 위해 서양 학생들처럼 형식논리적인 사고를 하지 않고 변증법적 사고를 한다는 것이다. 형식논리적 사고방식은 생각하는 대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한다. 비판적 사고의 기본인 분석적 사고도 분석하는 대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가능하다. 그러나 변증법적 사고방식은 모든 생각의 대상이 유기적으로 관련되어 있으며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래서 대상을 흑백의 논리로 구분하는 이분법이나 'A=B이고, B=C이면, A=C이다' 라는 삼단논법은 형식논리적 사고에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A, B, C 모두 계속 변화하는 존재로 보는 변증법적 사고 체계에서는 어떤 대상이 절대적으로 '같다' 혹은 '다르다'를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형식 논리적인 방식으로 추론하는데 비하여 동양인들은 직관에 의한 변증법적 경험주의 방식으로 생각을 하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서양적 비판적 분석적 사고가 동양문화권의 사람들에게 잘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양인들은 둘 중 하나를 택하기보다는 중도로 타협하는 것을 선호하고, 설문 조사에서조차 1(전혀 그렇지 않다), 2(그렇지 않다), 3(보통이다), 4(그렇다), 5(매우 그렇다) 중에 체크하는 경우, 극단적인 1이나 5에 답변하는 것보다 중도적인 2나 4에 답변하는 경향이 서양인들보다 훨씬 크다고 보고된 바 있다. 룬의 연구를 보면, 형식논리에 기반한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수업에서 서양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 학습법(적극적으로 토론하고 질문하고 참여하는)을 많이 사용할수록 성적이 높았지만 아시아 학생들은 그런 학습법과 성적과의 상관이 약했다. 아시아인들은 성적이 높은 학생들이더라도 서양인들의 비판적 사고 방법에 의한 것이 아닌, 다른 인지 방법(e.g. 변증법적 사고)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반면 서양 학생들은 비판적 사고 공부법을 많이 사용할수록 비판적 사고력이 높고 성적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변증법적 사고력이 높으면 오히려 비판적 사고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 연구 결과로만 보면 문화권에 따라 사고의 체계와 방식이 다르기에 아시아 학생들이 비판적 사고 학습에 불리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룬의 주장대로라면 특히 서양의 형식논리적 사고에 기반하여 발달된 대표적인 과목인 수학과 과학 분야에서 형식논리적 사고에 익숙한 서양인들이 더 잘 해야 한다. 하지만 수학과 과학은 다른 어느 분야보다 아시아인들이 두드러지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이다. 미국 대학의 입학사정관들은 아시아 학생들이 수학과 과학을 잘 하는 것은 너무나 흔하기 때문에 입학사정관들의 눈길을 끌려면 다른 특징과 특기를 내세울 것을 조언하기조차 한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보면 단지 동서양의 사고 방식 차이가 성적 차이의 원인이라는 룬의 주장이 설득력을 잃게 된다.   지난 호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아시아인들이 수학 과학 분야에서 압도적으로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은, 첫째는 아시아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아시아인들이 높은 점수를 보이는 시험들 모두가 대학 이전을 비교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초/중/고 시기의 압도적인 우위의 비율만 보면 세계적인 수학자와 과학자도 아시아인들이 휩쓸어야 맞는데 정작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학 이전의 교육에서는 반복학습에 기반한 지식의 완전한 수용 정도를 평가하는 시험이 비중이 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비판적, 창의적으로 보는 역량을 평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게 마련이다. 그러나 대학 이후의 전문적 교육에 들어가면 결국 수용적 능력보다 비판적, 창의적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게 되는데, 오랜 기간 수용적 학습만으로 단련된 학생들은 갑자기 비판적, 창의적 학습자가 되기 어렵다. 대학 이후의 상황이 달라진다는 점은, 아시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미국의 대학에 입학한 유학생들과 미국에서 나고 자란 아시아학생들이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대학 이전에 아시아에서 교육받은 아시아 유학생들은 미국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닌 아시아인들과는 달리 대학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성적이 떨어지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보고된 바 있다.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학들에 전설 같은 높은 점수로 입학을 했어도 결국 적응을 못해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사례도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닐 정도이다. 수학/과학 분야에서도 고교까지의 시험에서는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아시아 유학생이 스스로 연구주제를 발굴해야 하는 대학원 이상에서는 대입 이전처럼 현저한 두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즉 대학입학 이후에 공부가 점점 상위 위계로 갈수록 아시아인들의 수용적 교육방법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을 기르는 것은 전세계 대학의 보편적인 목표라고 보고되어 왔다. 비판적 사고력은 일반적인 지능과 다른 개념인데, 일반적인 지능은 타고난 것으로 변화가 어렵다고 인식되는 개념인 반면, 비판적 사고력은 '길러지는 것'이고 그것을 기르기 위한 특정 '방법'이 있기 때문에 교육적 잠재성이 더 커서 교육자들의 관심을 더 끌어왔었다. "비판적 사고력은 길러진다는 것" 이 사실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동양인들이 비판적 사고를 강조하는 수업에서 약한 가장 큰 이유는 학교에서 그렇게 되도록 길러졌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를 위한 수업에서의 학습방법(다른 관점으로 보기, 질문, 반박, 토론하기 등)이 적극 장려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평가"되지 않아 왔다. 그보다는 교수가 전달하는 지식과 정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만 하고 그 수용이 얼마나 완벽했는지 평가하는 시험이 주류였던 것임을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동서양 사고방식이 문화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학습법이 다르다는 주장은 유학생들에게나 해당될 뿐이며, 문화권에 따라 다른 학습법의 차이는 그렇게 공부하도록 길러진 교수법의 차이에 기인한다. 즉, 룬의 주장처럼 동서양의 학습방법의 차이가 문화적 사고방식 차이에서 기인하기보다는 학교에서 "평가되는 기준"이 다른 것이 더 큰 원인이다. 그리하여 서양 교육권에서 아시아학생 패러독스는 수용적 학습이 비중이 클 경우에만 해당될 뿐 비판적 창의적 사고가 주체적으로 요구되는 고등교육에서는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다.



[출처: 중앙일보 2015.08.17.] "아시안 패러독스 2)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방식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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